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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東萊) 영보단(永報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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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東萊) 영보단(永報壇)비석


동래(東萊) 영보단(永報壇)비석

부산박물관 복천분관 앞에 작은 비석이 하나있다.
눈여겨 보지 않으면 지나칠 만큼 그리 두드러지진 않지만 복천 고분군에서 구름다리를 건너면 마주 보이는 곳에 영보단이러고 새겨진 비석이 세워저있다. 

항상 지나치던 이 비석에 대해서 알아보고 이 내용을 공유 합니다.

이 비석이 세워저 있는 영보단(永報壇)은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동에 있는 고분군 건너 북장대 가는 길 쪽의 경사진 곳에 있는‘永報壇’이라고 새겨진 비석이다.

이 비석은 구한말(舊韓末) 일제가 나라를 강점하려는 기미를 보인 1909년 중앙정부에서 호적대장을 거두어들이려 하자 동래지역 13개면 주민들은 회수된 호적대장이 훼손될 것과 기우는 국운과 국민으로서의 울분을 감내하지 못해 호적대장 전체를 모아 불태운 뒤 그 재를 그 자리에 묻은 곳이다.

이 비석이 특별한 것은 지금으로 말하면 개인정보라고 할수 있는 서류를 묻어두고 단을 쌓고 비를 세운것이다. 

이후 주민들은 매년 4월 13일이면 이 자리 모여 제사를 지내며 침탈로부터 우리의 것을 지켜 내려는 의지를 굳히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비석은 1915년 주민들이 ‘永報壇’이란 이름으로 호적을 불태운 자리에 세워 그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자 한 것이다.

영보단이 위치한 마안산(馬鞍山)은 동래의 주산이며 동래성의 북쪽 가운데 위하고 그 주봉에는 동래성 북장대가 있다.
영보단이 발굴될 당시엔 호적대장이 심하게 부식한 나무궤와 더불어 호적대장이 탄화한 형태로 부서진 채 나타났다고 한다. 

다행히 호적대장의 양식을 살필 수 있는 부분은 있었으나 내용에 대한 파악은 전혀 불가능할 정도로 부서져 있었다고 한다.

이를 미루어 짐작하면 호적을 불태우지 않고 매장한 것으로 볼수 있다.

"해양수도 부산"의 자료를 인용하면
'최근 발굴한 지전(芝田) 이광욱(李光昱)의 문집인『芝田集』9卷(권)「戶籍事名面通知書」에는 영보단에 관한 소상한 기록이 실려 있어 그 전말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 이에 따르면 영보단에 매안(埋案)한 연대는 1909년으로 보이며, 발굴 과정에서 수합한 놋쇠로 된 제본 부품이나 그 크기로 미루어 이는 광무 연간의 이른바 신호적이 아니고 구호적(舊戶籍)이다. 또한 추호(秋湖) 박필채(朴苾菜; 1841~1925)의 문집인『秋湖遺稿』5권에도 이와 유사한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고 기록하고 있다.

주:
옛날 동래부(東萊府)는 마안산을 중심으로 1895 - 1896까지 조선시대 23부제 아래 최고 지방 행정구역이었다.
동래부는(東萊府) 1896 - 1903, 1906 - 1910 대한제국 13도제 아래 경상남도의 부로있다가 동래군을 동래부로 승격하였다.
이후1910년 부산부로 개칭하였다.

-- 대수롭지 않게 지나치던 영보단 비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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