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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것을 논리로 풀려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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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것을 논리로 풀려하지 말라!


논리로 모든 해답을 얻을순 없다. 아직도 한참 남은 년말이지만,마음 쓰이는 일 때문에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경구(經句)를 생각해 본다.
 
이제 한해가 한달하고 조금더 남았다. 계산적 문제로 사안을 파악해서 논리적인 생각을 하거나, 아직도 덤으로 사용할 한달 가까운 시간과 완전한 한달이 고스란이 남아 있다고 넉넉하게 남은 시간을 보내거나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계산적 해답인 한달 반 정도의 시간은 사실이며, 이 시간은 목적하는 바에 따라서 아무것도 할수 없는 바쁘고 모자라는 시간 일 수도 있고, 반대로 못할게 없이 충분히 여유있는 시간 일 수 도 있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는 만능은 아니며 일정부분 결함을 포함하지만, 적어도 경계 이쪽에서는 완전함을 말 하는 것 이다. 이 말은 논리적으로 결함을 내포하지만 마음이 만든 결과를 볼때는 가장 완성된 말 이라는 것이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한 생각을 하게되는것은 사람이 물질적 잣대에 고착되어서, 유동적이며 형태도 없는 마음이 이뤄주는 긍적적인 큰 결과를 이미 무시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원효선사의 말처럼 무덤가에서 하룻밤을 지새는 사람에게 한밤중에 귀신이 그를 괴롭힐 것은 뻔하다는 지식때문에 고착된 사고로 하룻밤 귀신에게 시달렸다면, 이는 논리로 풀수 없는 영역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걸 논리에 대입하려고 애쓰고 논리로 풀겠다는 생각을 한다. 생각을 논리가 점령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음은 모든것을 가능케하며 또 모든것을 불가능케한다. 마음이 불가능케하는 대부분은 논리로 풀수 있고 결과를 예측할수 있으나, 마음이 가능케 하는 것 은 대부분 논리로 풀수 없어서 결과를 예측할 수 도 없다. 결과를 예측할 수 없다고 해서 암담한게 아니고, 바라든 희망이 이루어지는 과정이라는 것으로 믿기가 힘든 것 이다.
 
이상이 일체유심조의 위대한 내용중에서 작은 설명중 일부이며, 논리로 표현할수 없는 지극히 유연하고 형체까지 없지만 때때로 느낄수 있는 마음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이 경구대로 실천하더라도 중요한 것은 논리로 풀수 있는 것과 논리로 풀면 안되는 것들의 경계를 알고 있어야 한다.
 
경계가 무너진 상태로 아무거나 마구 논리에 대입 함으로서 물질적 공식과 마음의 법이 결함투성이로 보여지게 되고 나아가서 갈등의 늪에 빠지게 된다. 경계를 이루는 가운데 부분이 사실이며 감성과 논리가 경계를 기준으로 나뉘어 있지만 때로는 사실이 무너지고 논리와 감성이 혼돈으로 놓일때 갈팡질팡하게 된다는 말이다.
 
고타마 붓다께서는 이 경계의 한쪽인 형이상학적인 의문을 십사무기(十四無記)로 제한했다고 이해 해 보며, 고집멸도(苦集滅道)로 또는 사성제(四聖諦)로 확실하게 구분을 둔 것으로 생각 하게 된다. 그래서 불교는 보다 현실적인 삶의 본질을 알려주려는 종교로 보게되고, 따라서 수많은 경구(經句)들은 인간이 살아가는 방법과 의문에 대한 구체적인 해답으로 귀결되는 것을 볼수 있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는 화엄경의 핵심사상을 말한다고 하지만, 그보다는 고타마붓다께서 이미 오래전에 사람이 살아갈때 어떻게 천국처럼 희망적으로 살며 모든것을 흑자로 쌓을수 있는 방법과, 또 스스로 지옥에서 살면서 모든것을 뺏기고 잃으며 적자로 살 것 인가를 가장 쉽고 현실적으로 알려 주려고 한 경구(經句)라고 이해한다.
 
하지만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를 함부로 말할수 없는이유는, 마음으로 바라던 일이 이뤄진 후에는 경계의 놀리로 풀수 없었던 논리로도 설명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이는 인간이 모르는 종교의 어떤 능력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보며, 듣고 배운것들을 내맘대로 생각해 본 것 이며 큰뜻을 그르치지는 않는지 모르지만, 다 잘 되리라는 생각을 한번더 다짐하며 블기를 마친다.


<시니어리포터 정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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