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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탐방(1)김해 봉황동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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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탐방(1)김해 봉황동 유적


역사탐방(1)김해 봉황동 유적-김해패총지역

김해시의 너른 지역은 역사 유적지가 시기적으로 뚜렸한 흔적들이 남있고 또 보존도 잘되고 있다.
특히 봉황동 유적지는 국내외의 사학자들에게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는 역사 벨트를 가지고 있으며,
대성동 고분박물관이나 국립 김해박물관은 작은 시에 소재하는 박물관으로서는 규모가 크며 중요역사자료가 많다.

최근엔 가야국을 포함해서 4국시대로 역사가 재평가 되야한다는 중심에 금관가야 즉 김해지역이 있다.


김해 봉황동 유적지는 경남 김해시 봉황동(발굴당시 김해읍 회현리(會峴里))에 있는 역사 유적지로서 패총유적 이다.
발굴된 조개더미에서 수많은 유적이 나옴으로서 김해패총(金海貝塚)으로도 불린다.

봉황동유적지는 봉황대라고 불리는 구릉지와 그 주변 지역을 포함한 대규모 생활,생산유적지로서, 1920년 우리나라 최초의 고고학적인 발굴조사로 유명한 회현리 패총과 합쳐저서 불려지는 이름이다.

이 일대는 청동기시대부터 마을이 형성되기 시작한 이후 생산과 주거의 거점지역이었으며, 이후 대규모의 주거지, 고상건물지, 방어시설, 한국 최대 깊이의 패총 등이 발굴되는 점 등으로 보아 금관가야 지배층 집단의 중심 거주지역으로 발전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처움 발굴은 1907년(융희1년) 동양 사학자인 교토제국대학교수인 이마니시(今西龍)가 1920년과 1934~1935년에 걸쳐 매장지를 조사 발굴하면서 조개더미유적임이 드러난곳이다.(근거:위키백과)*

김해가 직접 발굴하기는 2001년부터 김해시에서 경남발전연구원을 통해 실시하는 봉황동유적지 발굴사업인데,이 사업과정에서 항만접안시설 까지 존재할 개연성을 이야기 하고 있으며 머지않아 가야국의 배도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현재 김해시가 금관가야국의 중심지는 알려지는 것은 정확한 사실이며 해상교역국임을 암시하는 굴립 주건물지가 다량 출토되고 있다.

봉황동에 발굴된 유물들은 붉은 토기(赤色土器),회색 토기,신라 토기의 파편과 철부(鐵斧),철도자(鐵刀子, 쇠 손칼) 왕망 시대의 화천(貨泉) 등도 발견되어 철기 시대의 패총임이 증명되고 있다.


그리고 상식석관(箱式石棺),옹관(甕棺),세형동검(細形銅劍),마제석촉(磨製石鏃) 등과 금석 병용기 말부터 ~ 삼국 고분기(三國古墳期)의 것으로 추측하는 유물들의 집합이 발굴되고 있다.

삼국유사에서는 5가야조를 아라가야(阿羅伽耶),고령가야(古寧伽耶), 대가야(大伽耶),성산가야(星山伽耶),소가야(小伽耶),금관가야(金官伽耶),비화가야(非火伽耶)라고 하는데 김해지역은 금관가야 지역이다.
또 삼국사기 지리지에는 고령가야,금관국,아시라국(阿尸良國),대가야국(大加耶國) 으로 적혀있다.
이하 <출처:김해시청>

왜 이런 강력한 가야제국들의 역사가 3국시대의 그늘에 묻혀 있는가를 호사가들은 가끔 회자하는데,
아마도 신라가 혼이나고 겨우 함락한 가야역사를 일부러 축소한게 아닌가 하는 뜻으로 말이다.

*재미로하는 역사탐방-김해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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