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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등산,약초

야경 찍으려다 조난당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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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경 찍으려다 조난당한 이야기


건강을 위해서 주위의 작은 산을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놀러다니는 정도의 산행을 하는 나는 그리 좋은 체력은 아니다.

하지만 카메라를 들고 사진도 찍으면서 천천히 산을 오르면 심신이 개운하곤 해서 다닐 뿐이지, 산에 대한 별다른 지식이나 특별한 경험도 상식도 없다.

부산의 장산은 634m의 크지도 작지도 않은 산이다.
이 정도 산은 동래 고당봉이나 당감동 백양산과 비슷하고 항상 지척에서 바라보던 산이므로 생각 없이 오르기 시작했다.

날씨가 춥고 평일이라서 산행인 들이 아주 간간이 스칠 뿐이다. 반여동으로 오르는 길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다.
버스 기사가 반여초등학교 옆으로 가면 된다고 한 이야기만 듣고 올라가 보니까 그리 험하지는 않다고 생각하며 한참 후에 도착한 곳이 수없이 많은 바위들이 있는 너덜 지대에 와 있었다.

어쩌다 똑바로 오르다 보니까 길을 벗어나서 너덜에 와 있는 것이다. 팔짝팔짝 뛰면서 바위를 한참 오르는데 자꾸만 덩치 큰 바위가 나타나며 위를 쳐다봤을 때 아득한 바위 너덜이 보인다.
어느덧 숨소리도 목에 차고 있다.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에 옆으로 나가는데 바위 옹벽에 부딪친다. 이거 야단난 게 아닌가? 몇 번 힘든 바위 타기를 하다가 배낭의 물병이 바위굴 저 아래로 굴러떨어져서 잃어버렸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이게 오늘의 화근일 줄 지금은 몰랐다. 다시 내려가서 물병을 줍는 것을 포기했다.
악을 쓰고 옆으로 너덜을 빠져나오는 데 성공하고 한참 후에 기진맥진한 상태로 군부대가 있는 철조망 부근에 도착했다.

땀에 젖은 점퍼를 벗고 물 없이 빵을 두 개 먹은 후에 작은 바위 위에서 송정이며, 해운대며, 광안리 쪽으로 내려다보면서 올라올 때의 악몽은 깨끗이 잊게 되었고 아름다운 경관을 몇 장 담았다.

하필 멀리 물안개가 자욱해서 사진 시야는 나오질 않지만, 바다 경관은 내가 부산 일부의 산을 올라 본 경관 중에서 가장 뛰어나다는 것을 느꼈다.

정상을 한 바퀴 돌고 난 후에 사진 욕심이 발동했다.
자주 올 수도 없는데 온 김에 화려한 야경을 찍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삼각대를 준비하지 못했다.

시야가 확보된 풀밭을 택해서 쉬면서 나무막대를 구해서 땅에 박고 위엔 맥주 캔 하나를 엎어서 카메라가 얹힐 정도로 삼각대 대용을 만든다.

비상 테이프를 가방에서 찾아 단단히 얽어매어 카메라를 얹어놓고, 자동 샷으로 시험 촬영을 해본 후에 몇 번을 수리하고 교정해서 간이 촬영 장치를 만들고 나니 서서히 어둠이 다가온다.

낮에 고생하며 오른 일은 까마득히 잊고 콧노래도 부르며 아무도 없는 산꼭대기에서 밤중에 쇼를 할 수 있는 행복한 시간을 잠시 가진다.

어쩌면 홀가분한 마음이며 상당히 미친 짓 같지만, 저 멀리 도심의 불빛을 보며 고함치며 노래해도 아무도 없는 곳에서 한 번쯤은 해 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을을 뒤로하고 어둠의 농도가 짙어질수록 아름답게 나타나는 도심은 쉽게 볼 수 없는 장관이었다.

이 경관이 나를 시간도 잊어버리고 오래 머물게 했다. 맥주 캔에 올린 카메라는 자동 샷의 작은 움직임에도 미끄러져 굴러떨어지지만, 누가 보는 것도 아니고 시간이 정해진 것도 아니므로 느긋하게 몇 번씩이나 다시, 또다시 시도해서 야경을 담곤 했다.

찍은 걸 LCD로 다시 보기도 하고 하면서 느긋하게 시간 가는 줄 몰랐었다.
 
한참을 놀다가 목이 마르고 배도 고픈 것을 느끼고는 하산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이상한 삼각대를 빼어 지팡이 삼아서 하산을 시작했다.

조금 어둡기는 해도 간간이 비치는 도심의 불빛을 위안 삼고 8부 능선을 내려왔을 때에 생각지도 못한 낭패가 났다. 낮에 봤던 먼바다 물안개가 느닷없이 산허리를 감싼다.

나는 바닷가에 자주 놀러 가고 젊었을 때 낚시를 취미 생활로 해서 물안개에 대해서 잘 안다.

물안개의 규모로 봐서 심상치 않음을 알아차리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완전히 깜깜하여 도심의 불빛은커녕 발아래가 바위인지 벼랑인지도 분간할 수 없이 캄캄해지는 것이다.

 사람이 급한 맘이 발동하면 본능적으로 설치게 된다. 나는 상당히 느긋한 사람이며 또 별 장난도 잘하는 성격이지만, 그때를 돌이켜보면 스스로를 제어하지 못한 시간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평소에 가끔 멀리서 보던 산허리를 감싸고 있는 물안개 띠를 상상해서 이 지점을 가늠하고 빨리 이 부분을 통과하면 잘 보일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더듬더듬해서 평면 바위에 앉아서 가방 속을 더듬어 광부처럼 머리에 쓰는 벨트형 플래시를 찾았지만 배터리는 없었다.

이미 땀은 젖었고 목은 마르지만, 물도 없고 체력은 급격히 소진되는 것을 느꼈다.
빨리 안개 띠를 벗어나려고 했던 것이 잘못이라는 것을 깨닫고 저절로 한 바퀴 굴러, 떨어진 낙엽 웅덩이에 드러누워서 한참을 쉬었다. 알고 보니 내려오는 길은 반여동 쪽이 아닌 재송동 쪽으로 내려오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에라 모르겠다.
죽기야 하겠나! 한참을 누워서 쉬었는데, 산고양이들이 내가 죽은 짐승으로 아는지 사사삭!사사삭! 하는 소리와 함께 빠른 움직임이 주위에서 자주 포착된다.

등산 중에 조난당하여 의식을 잃으면 산고양이가 뜯어 먹는다는 소리가 생각나서 내려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일어나려 했다.


 그런데 아, 다리에 힘이 없다. 반은 기고, 반은 걷고, 반은 구르고 하면서 땀은 범벅이고 힘든 하산을 한다. 허겁지겁하느라고 아마 100m도 못 내려왔을 것으로 생각하는데 지치고 말았다.

겁이 나기 시작했다. 휴대폰을 꺼내서 단축 다이얼 1, 2, 3까지를 다 걸고, 낮에 이야기했던 친구한테도 내가 장산을 어둠 속에서 내려간다는 뉴스만을 이야기했다. (만약을 대비해서 )

설상가상으로 휴대폰 배터리도 얼마 안 남았다. 휴대폰을 바꾸려고 계획은 하고 있었는데 안 바꾼 게 막 후회된다.

또다시 구르고, 걷고, 기고 하면서 얼마를 내려왔을 때 아주 희미하게 불빛이 보인다. 자세히 보니까 2개이다.

귀신 불인가?
이 산속에 불이 있을 수 없는데, 어떤 귀신이 집을 지어 놨나? 헛것한테 홀릴 정도로 정신이 혼미한 건 분명 아니었다.

하여튼 불빛은 약간 청색이고 아주 희미한 종류의 불빛이지만, 그걸 목표로 내려가니까 조금은 수월했다.

아마도 가속도를 붙여서 내려갔다고 생각한다.
불빛이 제법 가까워졌을 때 나는 이윽고 체력이 바닥나고 말았다. 불빛을 거의 10m 정도 남겨두고 탈진 직전이었다.

 물안개 지역은 벗어났지만, 산의 등성이가 아닌 계곡으로 쏟아졌기 때문에 어둡기는 거의 한가지였다고 생각된다.

나의 손엔 낮에 만든 캔이 붙어있는 삼각대가 쥐여 있었는데 여기서는 버려야 했다. 허벅지가 꼬여서 일어날 수가 없었고, 난생처음 경험하는 몸이 풀리는 증상이 왔다.

희미한 불빛의 정체는 뒤에 안 것이지만 산허리 아래의 장산 너덜공원에 장치한 솔라판넬을 이용한 태양광 무인 조명 장치였다.

가로등처럼 밝은 것이 아니며 소전력으로 너덜체육공원에 새벽에 오는 등산객을 위한 해운대구의 배려인데 정말로 고마웠다.

지척에 보이는 간이 벤치에 도착한 것은 한참을 쉬었다가 가능했다. 이제는 결정을 해야 했다. 짧은 시간 안에 119에 신고해서 나를 위탁할 것인가?
집이나 친구의 힘으로 소문내지 않고 벗어날 것인지를 말이다.

일단은 불빛의 위안이 대단함을 느끼면서 마음을 가다듬고 한참을 휴식했다. 아, 이렇게 해서 별거 아닌 산에서 조난당하고 사고가 나는구나 하고 생각했으니까 정신은 또렷했다고 본다.

 현 위치를 휴대폰 배터리가 소진되지 않는 시간 안에 빨리 말할 내용을 마음속으로 몇 번이나 반복 구사하고 정리해서 빨리 전화하고 끝냈다.

 남은 배터리가 있어야 최악의 경우를 대비한다는 생각으로….
비상조치를 일단 끝내고 벤치에 누웠지만 잠들지는 않았다. 어! 일어나서 걸어보니까 다리(허벅지)가 꼬이는 증상이 없어졌다.

몇 발자국 걸어도 되고 운동기구에 매달려서 허릴 펴도 되었다. 공원 안을 서성거리면서 장산 너덜공원이라는 것도 알았다.

이 공원이 자동차 길과 얼마나 먼 거리인지는 모른다.

내려가는 길이 왼쪽과 오른쪽 두 개 있었다. 용기를 내어 얼마나 먼 길인지는 모르지만, 왼쪽으로 내려가길 결정하고 다시 전화해서 왼쪽으로 내려간단 말을 알리고 만약에 다시 다리가 꼬일 때를 대비하고 걸었다.

마음이 정돈되고 휴식이 약이 되어 천천히 걸을 수 있었고, 얼마 후에 장산 APT라는 글자를 볼 수 있었고, 곧 기진맥진한 모습으로 캔 게토레이를 하나 사서 마시면서 택시를 탈 수 있었다.

 산을 얕보고 함부로 오르지 말라는 말을 귀담아듣지 않은 나를 후회하면서 그 내용을 이제야 확실히 알 것 같다.
지금 생각이지만 만약 몇 번을 굴러떨어졌을 때 낙엽 웅덩이가 아닌 바위에 머리를 부딪칠 수도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정말 아찔하다.

준비 없이 까불다가 된통 당했지만, 어디 하나 부러지거나 망가진 데 없이 내려와서 얼마나 다행인가?
이 경험담을 쓸 수 있게 된 것을 내가 알지 못하는 동안에도 굽어살펴준 크신 분께 감사드립니다.

이제는 배터리를 3통 사서 헤드셋에 넣고, 별도 스페어 박스에 보관해서 배낭 특별주머니에 펜치와 니퍼, 테이프와 함께 비상대책을 확실히 했다.

별거 아닌 도심 산에서 당한 조난 이야기 끝.

<시니어리포터 정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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