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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여행,역사

동래(東萊)의 지명(地名)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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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東萊)의 유래

 

부산은 한반도에서 역사적으로 예나 지금이나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지역으로서 그만큼 역사적인 소용돌이를 많이 받는 지역이다.
크고 작은 격변기를 겪으면서 타 지역보다 빠르고 앞선 경제력과 문화를 가진 고장으로 발전해서 지금의 우리나라 제2의 도시로 발전한 부산은 그  전신으로 동래가 있다.
부산이라는 지명은 근래에 확정된 지명이며 오랜 역사는 동래지역으로 부터 연결된다.

그래서 동래지역은 동래성안에 잘 보존되고 있는 수많은 역사성 깊은 유적들이 남아 있으며 그것을 말해주는 숱한 이야기들도 동래성안에 구전되어 오고 있다.

이런 모든 것은 동래성을 둘러치고 있는 마안산과 그 끝자락 망월산안의 내성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지금의 행정구역으로는 칠산동, 복천동, 수안동, 낙민동일부, 명륜동일부, 명장동일부, 안락1동일부라고 볼 수 있으며 그 핵심지역은 복산동(복천동+칠산동)이다.

 

 

동래성 마안산(대포산)-망월산 종주 코스
동래성 마안산(대포산)-망월산 종주 코스

 

 

동래의 지명변천사
본디 동래(東萊)는 동쪽에 있는 래(내) 산(萊山)을 말하며 래산(萊山)은 봉래산(蓬山)을 줄인 것이며 봉래산은 신선이 산다고 전해지는 산이다.

동래지역을 역사적인 근거가 있는 때부터 출발하면 삼한시대에 지금의 금정산, 마안산, 장산, 금련산,  황령산, 배산, 등을 주축으로 발전했던    변진독로국, 내산국, 장산국, 거칠산국 같은 소국시대였다가 이 소국들이 보다 강력한 신라에 합병되면서 이 지역이 거칠산군으로 불려지다가 경덕왕 16년(757) 동래군(東萊郡)으로 명칭이 확정된다.

이후 고려 때 지방행정명칭 현(縣)으사용되면서 현종9년(1018)동래현(東萊縣현종 9년(1018) 동래현(東萊縣)으로 되었다.
조선시대로 들어와서 태조 6년(1397)에 동래진(東萊鎭)이 설치된다.

명종 2년(1547)에는 시대적으로 일본과의 관계가 중요하게 발전하면서 당시 정 3품 당상관이 부임하여 다스리는 도호부(都護府)로 승격 설치되어 최초로 문관(文官)인 도호부사(都護府使)가 부임한다.

 

조선조 혼란기에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이후 왜군을 격퇴해서 수복하지만 패전지의 오명으로 이 지역의 행정구역이 현(縣)으로 격하된다.

그 후 선조 32(1599)년 지역적 중요성 때문에 다시 도호부(都護府)로 승격 복원되어 정 3품 당상관이 부임한다.

1914년 이 지역이 팽창하여 부산부(釜山府)와 동래군(東萊郡)으로 분할된다.

지금의 동래구는 이때 분할된 동래군(東萊郡) 지역인데 1942년 동래군은 부산부로 편입되고 동래출장소로 되었다.

 

현재 사용하는 행정구역 명칭 시, 군, 구제가 시행되는 1976년 정식명칭 부산시 동래구로 확정된다.

동래구는 급 팽창하고 부산의 거대구로 발전해서 동래구는 큰 지역으로서 현재의 남구, 해운대구, 금정구, 연제구가 원래 동래구 지역에서 구획 분할되어 나왔으며 그 옛날 동래부사가 집무를 보든 핵심 동래성의 내성지역만 지금 동래구로 남아있다.

 

현재 동래는 과거의 가락국 때부터의 오랜 역사가  이 지역에 보존되고 있는 핵심지역이며
내성 일대는 역사박물관과 흡사하며 그 중심에 가야유물의 보고인 복천동 고분군과 복천박물관이 자리 잡고 있다.

이 지역을 이해하는데 좋은 방법으로 위의 지도처럼 마안산(대포산)과 망월산을 잇는 탐방코스를 답사해 보면 잘 보존된 여러 역사 흔적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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